(이 글은 2011년 4월에 쓴 글입니다)
“짜장면이 좋아, 짬뽕이 좋아?”라는 질문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질문과 함께 인류 탄생 이래 대답하기 가장 힘든 질문 가운데 하나이다.
짬짜면이라는 어중간한 메뉴로 그 첨예한 질문을 애써 회피하기도 했고 잊을만 하면 나오던 표준어 논란에 “짜장면이 자장면이면 짬뽕이 잠봉이냐?”라는 반문으로 사람들은 짜장면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길고 긴 싸움은 결국 짬뽕의 승리로 기울어지는 느낌이다.
요즘 거리를 걷다 보면 ‘짬뽕 전문점’으로 간판을 바꾼 중국집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또 아예 짬뽕만 파는 음식점(중국집?)도 상당수 있다.
유명한 짬뽕집 앞은 30분 줄 서서 먹으면 행운일 정도로 짬뽕이 재조명되고 있기까지 하다.
어렵던 어린 시절, 그래도 근소한 우위를 지키던 짜장면의 위상이 어쩌다가, 언제부터 이렇게 추락한 것일까..

짜장면과 짬뽕이 대표적인 서민 외식메뉴로 자리잡은 것은 박 모 대통령 시절부터였다고 한다.
화교의 경제 활동을 극도로 제한해 중화요리집을 운영할 수 밖에 없게 하고 짜장면 가격을 물가 억제의 대표주자로 삼으면서 일제 시대 높으신 분들만 먹을 수 있던 중화 요리를 일반 서민들도 (비교적) 싼 가격에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것 말고도 짜장면과 짬뽕은 외식으로 먹을 때만 그 맛이 난다.
짜장면의 조리법을 보면 춘장을 기름에 볶아 준 뒤 기름을 따라 내고, 다른 팬에 고기와 야채 등을 강한 불에 볶다가 볶은 춘장과 물(육수)를 넣어 끓인 뒤 삶은 면을 넣으면 된다.
짬뽕의 경우 기름에 고춧가루 등 향신료를 볶아 고추기름을 만든 뒤 각종 해물과 야채 등을 넣어 볶다가 육수(물)을 부어 끓인 뒤 삶은 면을 넣는다.
그런데 집에서 이렇게 조리를 하면 절대 그 맛이 안 난다.
짜장면을 집에서 만들면 시큼하달까 짜달까 뭐 이상한 잡맛이 나서 맛이 없다. 물론 군대나 회사식당에서 짜장을 먹어도 비슷하다.
짬뽕 역시 집에서 만들면 닭뼈로 닭육수까지 만들고 온갖 해물을 다 넣어도 밍밍하달까 닝닝하달까.. 고춧가루를 많이 넣어도 맵기는 매워도 칼칼한 맛을 내기 힘들다.
물론 중국집 맛의 비밀이랄까 비결이랄까는 미원이긴 하지만 집에서 미원을 중국집에서 넣듯이 국자로 퍼 넣으면 한 숟가락도 못 먹고 다 버릴 것이다.
중국집 맛의 또다른 비밀은 강한 불이다.
강한 불로 야채와 고기, 해물을 볶아 잡냄새는 날리고 ‘불맛’을 넣어 감칠맛을 더 하는 것이다.
그렇게 강한 불을 사용할 수 있는 가정집은 흔치 않다.

영원한 외식의 강자로 군림할 것 같았던 짜장면의 위세는 하지만 대자본의 공습으로 조금씩 허물어져 가게 된다.
그 유명한 오뚜기의 ‘3분짜장’, 라면계의 양대산맥이던 농심의 ‘짜파게티’와 삼양의 ‘짜짜로니’가 연이어 출시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뭔가 2% 부족한 맛’이었지만 전쟁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거의 짜장면 가격에 육박하는 짜장조리식품이 잇따라 등장하기 시작했고 편의점에는 전자렌지에 돌리기만 하면 되는 짜장면을 진열했다.
결국은 짜장이 분말의 형태로 팔리기 시작했다.
춘장을 볶고 강한 불에서 불맛을 내고 ‘화학의 마술’을 부려야 하는 (찝찝하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던) 그 과정을 모두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입맛도 자본의 힘에 길들여져 일부 아이들로부터 “짜장면보다 짜파게티가 더 맛있다”는 폭탄 선언을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목격하게 됐다.

하지만 짬뽕은 그 자본의 칼부림을 피해갈 수 있었다.
‘짬뽕라면’,’오징어짬뽕’등이 출시됐지만 사람들은 걔들을 라면처럼 끓이는 짬뽕이라기 보다는 짬뽕맛이 나는 라면으로 받아들였다.
짜장은 소스, 짬뽕은 국물이 그 핵심일터인데, 라면회사들이 출시하는 ‘짬뽕’들은 라면이라는 그 스프의 원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고급(비싼) 짬뽕조리식품들도 출시되기 힘들었다.
시커먼 소스 속에 정체 모르게 숨어 있는 짜장건데기와는 달리 짬뽕은 그 건데기들의 정체성이 굉장히 선명한데, 아직까지 현대과학으로는 그것들을 완전조리식품으로 구현하기는 힘들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짜장면과 짬뽕의 운명의 갈림길은 그 ‘정체성’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짜장은 검은 소스에 건데기가 묻혀 있는 상황이어서 삼선짜장이니 유니짜장이니 해물짜장이니 해도 비주얼로 표시가 잘 안 나고 비벼서 면과 함께 먹는 형식이기 때문에 재료에 제한이 많다.
하지만 짬뽕은 게나 전복, 새우, 송이, 낙지 한마리 등 가격과 형식에 제한이 거의 없다.
게 한 마리나 낙지 한 마리를 통째로 넣어도 해물탕 먹듯이 가위로 자르고 집게로 껍질 건져내고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을 뿐더러 먹는 입장에서는 그게 더 고급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게다가 맛집 블로그 등이 유행해 고급 식재료가 듬쁙 들어가는 음식이 입소문을 타고 다이어트에 매운 음식이 좋다는 설까지 퍼지면서 짬뽕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게 됐다.
결국 감춤/드러냄의 정체성이 현재의 승부를 갈랐다고도 볼 수 있다.

유행은 돌고 돌기 마련이다.
페리카나니 스모프니 하면서 치킨 체인이 유행할 때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왔던 몇몇의 ‘시장표 통닭’들은 지금 재조명을 받으며 사람들이 찾고 있다.
지금 30분 줄 서야 먹을 수 있는 몇몇 짬뽕집들도 한때 ‘유행에 뒤쳐진’ 취급을 받았을 것이지만 묵묵히 제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오늘의 자리에 있을 것이다.
무림의 고수 짜장면집의 화려한 반란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