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타고 지나가면서 산을 본다, 주마간산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꼼꼼히, 제대로 보지 않는 수박 겉핥기식의 앎을 경계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주마간산’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나무를 논하기 전 숲을 먼저 봐서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해야 할 경우도 있고, ‘제대로 하지 못할 바에야 아무것도 하지 않겠어’보다는 ‘주마간산’식의 지식이라도 얻는 게 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유럽탐사는 8월 21일에서 28일까지, 장장 8일에 거친 긴 연수였다. 하지만 한정된 회비 등으로 가다 보니 12명의 숙소도 호텔 대신 (2명이 한 침대에서 자야 한 경우도 있었던) 집 하나를 빌려 생활했고, 6인승 차 두 대를 빌려 12명 중 2명이 직접 운전을, 하루에 평균 5시간 정도씩 해야 하기도 했다. 예산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주 연수 목적과는 다른 나의 숨은 목적이었던) 맛집 탐방은 수시로 벽에 부딪혔다. 또한 단체로 움직이다 보니 ‘맛집 선정’에 많은 비중을 뒀던 나의 평소 (외국) 여행 스타일과는 달리 그야말로 ‘주마간산’식의 맛집 탐방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항상 다 차려진 밥상에만 숟가락을 올릴 수는 없는 법. 최대한 맛집을 찾거나 그나마 특색있는 메뉴를 고르려는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목적지인 독일을 가기 위해 거친 중국 상하이. 비행기 탑승 시간을 고려해도 5~6시간 정도 시간이 난다 하여 상하이의 신-구 관광지가 조화되어 있다는 ‘동방명주 탑’이라는 곳을 가게 됐다. 난생 첫 중국 방문인 만큼 양꼬치와 칭따오가 벌써부터 안구와 침샘 부근에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때의 광화문 광장처럼 물밀 듯이 밀려드는 인파와 ‘허름하지만 맛집의 포스가 풍기는 식당’이라고는 눈을 씻어도 찾을 수가 없어 결국 서브웨이의 샌드위치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 모 부장님이 발휘한 용기와 기지로 칭따오는 곁들일 수 있었다.

인파에 치여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상하이 공항에서는 그나마 ‘중국스러운’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다. 특히 군만두의 경우 신선한 맛의 부추가 듬뿍 들어 (막 생기려는) 여독을 푸는 데 도움이 됐다.
통조림 속 꽁치처럼 열 시간 넘게 비행기 안에 수납된 끝에 도착한 독일. 처음 먹은 ‘정식’은 독일식이 아닌 이탈리아 음식이었다. 화덕임이 틀림없는 조리기구에서 무심한 듯 구워낸 피자와 투박한 파스타, 낯익은 맛의 통조림 참치를 넣은 샐러드도 괜찮았지만
핑거푸드(한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통통한 식감이 살아있게 조리한 새우와 잘게 썰어 올리브유에 버무린 토마토, 구운 파프리카 등을 올린 브루스케타가 풍기는 아우라는 ‘이것들아, 여기가 바로 유럽이다!’라고 외치는 듯했다.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개인적으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입에 맞지 않는 ‘현지식’에 미각이 지쳐갈 즈음, 하지만 ‘한국식’을 찾기 힘들거나 ‘한국식이라고 쓰고 정체불명식이라고 읽는’ 음식점만 눈에 띄는 경우 가장 무난한 해법은 ‘차이니즈 레스토랑’이다. ‘니하오’라는 어이없이 노골적인 중국 음식점에서 먹었던 고기볶음과 고기튀김, 마파두부와 질그릇 찜은 낯익은 편안함을 안겨줬고, 큼지막한 새우와 함께 고슬고슬 볶은 볶음밥은 ‘차이니즈 레스토랑의 볶음밥’의 진수를 보여줬다.
오래된 탄광을 관광 자원화으로 만든 에센 쫄페어라인. 한쪽 편에는 탄광과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고급 레스토랑이 있다. 생연어와 연어 알, 버터 소스로 맛을 낸 흰살생선 요리 등 다른 곳의 메인디쉬 가격에 육박하는 애피타이저로 혀끝을 만족시키고, 빵과 물로 위장을 만족시키는 양동작전을 펼쳤다.


버려진 습지 곳곳에 전시장과 조형물을 배치한 거대한 미술관인 홈브로이히 미술관. 입장료를 내면 먹을 수 있는 ‘구내식당’ 음식은 그야말로 자연의 선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관 안’에서 재배하고 거둔 식재료로 만든 빵과 잼, 감자와 사과 등은 가장 인상 깊었던 한 끼 식사.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잠시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쾰른 대성당 앞 광장에서 먹었던 시금치 크레페와 리소토, 파스타와 감자요리는 전형적인 유럽 관광지 광장에서 즐길 수 있는 여유와 맛, 분위기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모든 저녁은 한국식 요리로 정책’에 대한 치열한 투쟁 끝에 쟁취한 출장 마지막 날 뒤셀도르프에서의 ‘독일 전통식’. 맛있게 볶은 채소와 함께 나온 소시지와 베이컨, 감자와 스테이크 요리 등은 현지에서, 그것도 현지 뒷골목 어디에선가에서만 맛볼 수 있는, 20년 뒤쯤 불현듯 생각날 것 같은 그런 맛이었다.
만만했지만 만만찮았던 요리들은 사실,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새벽 6시 반부터 차를 운전해 가다가 적당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었던 빵과 커피였다. 한국에서는 ‘백화점 지하 2층’쯤에 입점해 있을 만한 질을 자랑하는 크루아상과 샌드위치, 커피 등이 만만한 가격으로 판매했는데, 뭔가 유러피언 같은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낯익으면서도 질리지 않는 동반자로서 매일 아침을 함께 할 수 있어 만만찮았고 기억남은 요리였다.
마지막으로 식비 절감 및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도록 한국에서 두 포기의 김치를 가지고 와서 김치찌개, 김치전은 물론, 흰 쌀밥과 배추전, 삼겹살 구이에 계란국까지 요리해 주신 이 모 시어머니께도 감사의 말씀을 공식적으로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저녁’까지 ‘김치와 남은 식재료’를 이용해 숙소에서 요리함으로써 ‘모든 저녁을 한국식’으로 하려는 이 모 시어머니의 계획에 반기를 들었던 나의 행위는, 다시 그 상황이 오더라도 변함이 없으리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기록해 두겠다.)
참고 기사 : 옛 도심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새생명을 불어넣다
